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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1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정용재(鄭容在)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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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1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정용재(鄭容在) 선생’ 선정
  • 엄순옥 기자
  • 승인 2022.12.3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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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1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정용재(鄭容在) 선생’ 선정. /사진=안성시 제공
안성시-경기동부보훈지청, 1월 ‘이달의 안성독립운동가 정용재(鄭容在) 선생’ 선정. /사진=안성시 제공

안성시와 경기동부보훈지청이 공동으로 2023년 1월 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로 정용재(鄭容在, 1901~미상) 선생을 선정했다. 

정용재 선생은 1919년 4월 1일과 2일 원곡·양성면 연합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19세의 청년으로 원곡면 칠곡리에 살면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선생은 1919년 4월 1일 저년 8시경 원곡면사무소에 모인 1000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친 뒤 성은고개(현 만세고개, 안성3.1운동기념관)를 넘어 양성으로 이동했다.

이어 양성면 동항리에 도착했을 때 만세시위를 벌이고 해산하려던 양성면민 1000여명과 연합해 양성경찰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돌며 투석 및 방화하고, 일본인이 운영하던 잡화점과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했으며, 다음날 새벽 4시경 원곡면으로 돌아와 재차 원곡면사무소를 방화해 전소시키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후 일제 군경에 체포돼 안성경찰서에서 신문을 받고 서울로 압송돼 기소됐다. 1919년 10월 20일 고등법원에서 예심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경성지방법원의 재판이 열리기 전에 옥중 순국했다.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나 현재까지 후손을 찾지 못해 미전수 독립유공자로 남아있다.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협력의 일환으로 안성지역 미전수 독립유공자인 선생을 ‘이달의 안성 독립운동가’ 1월의 인물로 선정했다. 자세한 정보는 안성3.1운동기념관 홈페이지 <안성 독립운동 인물 자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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